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== 1차 집단 이동 ==== 선거 직후 신한국당은 통합민주당[* [[이규택]]([[경기도]] [[여주시|여주군]]), [[황규선]](경기 [[이천시]]), [[최욱철]]([[강원도]] [[강릉시]] 을).], 자유민주연합[* [[최각규]] [[강원도]]지사, [[류종수]]([[춘천시]] 을), [[황학수]]([[강릉시]] 갑) 의원 등 강원도 지역 정치인을 죄다 끌어들였다. 신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민련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던 [[이재창]] 의원(경기 파주)도 국회 입성 6개월 만에 자민련을 탈당해 신한국당으로 복당했다.], 무소속 의원[* 무소속 당선자 16명 중 [[서훈]](대구 동을), [[백승홍]](대구 서 갑), [[원유철]](경기 평택 갑), [[박종우(1938)|박종우]](경기 김포), [[김영준(1941)|김영준]](충북 제천·단양), [[김일윤]](경북 경주 갑), [[임진출]](경북 경주 을), [[권정달]](경북 안동 을), [[박시균]](경북 영주), [[김재천]](경남 진주 갑), [[김용갑]](경남 밀양), [[황성균]](경남 사천) 총 12명을 신한국당에 입당시켰다. 이들 대부분은 지역구 발전을 위해 여당에 입당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신한국당에서도 이들에게 지역구 사업 추진에 큰 힘이 되는 건설교통위원회를 보장해주었다.]을 대거 영입,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며 1996년 연말의 노동법/안기부법 크리스마스 직권상정 정국을 예고했다. 이러한 '의원 빼가기'로 신한국당은 157석까지 의석이 늘어났으며,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총 의석은 125석으로 줄어들었다(국민회의 79 + 자민련 46). 이렇게 몸집을 불린 결과로 법률 개정안 정족수를 충족시킨 [[신한국당]]은 크리스마스 다음날 1996년 12월 26일 새벽, 자당 국회의원 154명을 버스에 태워 대동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, 기습적으로 노동법 개정안을 [[날치기]]로 통과시켰다. 자세한 내용은 [[1996년 노동법 날치기]] 참조. 게다가 대선을 코앞에 둔 1997년 11월엔 [[DJP연합]]이 이뤄지고 신한국당에 [[박근혜]]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영입되자, TK 자민련 의원 9명 중 3명인 [[이의익]] 의원(대구 [[북구 갑(대구)|북 갑]])과 [[안택수]] 의원(대구 [[북구 을(대구)|북 을]]), [[박종근(1937)|박종근]] 의원(대구 [[달서구 갑|달서 갑]])이 자민련에서 신한국당으로 당적을 바꿨다. 심지어 안택수 의원은 당시 자민련 현직 대변인이었다.[* 그는 당적을 바꾸기 직전까지만 해도 자민련 대변인으로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선두에 서서 문제제기 했었는데, 신한국당으로 이적한 이후엔 이회창 후보를 "참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"라고 추켜세운다.] 그리고 [[DJP연합]]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신한국당의 이회창과 통합민주당 조순의 주도로 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이 전격 합당하여 165석의 거대 여당 [[한나라당]]이 탄생한다. 그렇게 [[한나라당]]은 대선 후보 이회창, 총재 조순 체제로 15대 대선을 치뤘으나 결과는 [[김대중]]에게 [[대한민국 대통령|대통령]] 자리를 내주고 패하여 야당이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